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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주여행 20140505


 

전날 군산여행을 마치고 아침에 이성당 빵을 사먹고 군산터미널에서 버스타는데 조금 헤매면서 겨우 전주에 다다랐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 가달라고 했더니, 지금 차가 아마 못들어갈것 같다고할때..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남부시장쪽으로 돌아서 차를 세워주셔서 내려서 남문을 거쳐 전동성당까지 다다랐는데..이건 뭐 완전 헬게이트. 크리스마스 이브 명동도..불금의 홍대도... 이보단 덜할듯.. 아무튼 전동성당에 도착해 사진을 찍자는 말에 평소 늘 웃는얼굴이던 여자친구는 얼굴을 찌푸리고 사진을 찍었다. 몇걸음 걸어 경기전 앞에 다다라서는 도저히 더 못갈것 같아서 경기전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창가에 자리하나가 있어서 앉을 수 있었고, 유자차와 오미자차를 주문했다. 길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도대체 전주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들어보니 이날 전주에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모여들었고,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기사도 나온것 같은데, 우리가 하필 그날 거기에 있었다니..평소엔 잘 들어갈 생각도 하지않을 경기전 표사는 줄에 질려버렸다. 도저히 나갈 엄두가 안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래도 나가보자고 나와서 골목쪽으로 접어들었다.

 

 

그나마 길가에 핀 수국이 이뻐서 사진도 찍었지만 그외에는 그저 시끌시끌한 사람구경뿐 아무것도 기억에 남는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는길에 전주천쪽으로 빠지는 골목을 지나서 천변길을 한참 걸었더니 사람들이 그나마 많지 않은 건물이 보여 들어갔다. 전주향교라는 설명이 써있었다. 

 

 

한참을 앉아서 아침에 샀던 남은 빵을 맛있게 먹고 잠시동안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나오는길에 한옥에 과녁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전날 현빈 주연의 <역린>을 보고온터라, 흡사 영화속 활을 쏘는 장면의 세트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안쪽 건물에는 젊은 남녀 커플이 마루에 드러누워있었는데, 자세가 좀 보기 불편했다. 보시던 아주머니께서도 '저러고 싶을까'라는 말씀을 하셨음. 다시 전주향교를 나와 전주천을 따라 남부시장쪽으로 걸어가기로 했음.

 


예전에 <다큐3일>에 나왔던 남부시장의 명물 '청년몰'에 올라가보았다. 이곳에도 사람이 많았고 나는 TV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이 신기했다. 주인분들도 낯익었는데, 손님이 많아서였는지 다들 지쳐보이셨다.

 

 

배가 고팠는데 식당들은 모두 준비한 재료가 떨어졌거나 문을 닫았다. 저녁으로 회사 팀장님이 추천해주신 '가족회관'에서 비빔밥을 먹기로 해서 따로 백반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워서.. 헤매다가 청년몰의 바 '차가운 새벽'의 '어른의 아이스크림' 포스터를 보고 '이건 먹어야해'라는 호기심으로 얼른 사먹었다. 바 사장님도 티비에서 본 분이라 신기하공.. 쭈볏거리면서 줄 서 있으니까 안쪽으로 들어오시라고 쿨하게 말씀해주셨다. 이 '어른의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그야말로...대박 아이템인데.. 홍대에서 아이스크림에 꿀조각 올려팔았다가 줄서서 사먹을 정도로 대박난걸 생각하면..이거 홍대에 나오면 그냥 올킬..이지 않을까 싶었다. 욕심나는 아이템. 첫 맛은 술맛이 조금 더 강한데 아이스크림이 살짝 녹기시작하면서 부터는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굉장히 맛있는 그야말로 어른의 아이스크림이었다.

 

 

배가 고파서 어디 분식집 없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줄을 어마어마하게 서 있는 피순대집과 콩나물 국밥집을 거쳐 작은 분식집을 발견하고는 얼른 들어가서 만두와 비빔국수를 주문 했다. 가게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여기 대박.. 진짜 맛있었다. 사장님 손맛이 그대로 녹아있는 맛.. 만두도 직접 만드신것 같았는데 만두속이 좀 특별했다. 들깨맛도 살짝나고..암튼 독특하게 맛있었고. 비빔국수는 그야말로 끝판대장..보이는 주방에서 비벼서 바로 내주시는데..엄마가 해주시는 비빔국수맛 그대로였다. 정말정말 그 긴줄 서 있는 식당들에 비해 절대 떨어지는 맛이 아니었다. 이 분식집을 찾을 수 있었던것은 그야말로 행운!

 

 

 

배를 채우고 <전주국제영화제>를 보기위해 전주시내로 나왔다. 전주객사라는 한옥건물이 시내의 정중앙에 있는점이 특이했다. 전주 시내의 랜드마크였다. 객사에 앉아서 좀 이야기를 하다가 마감시간이라는 말에 일어나서 가족회관으로 향했다. 가족회관은 전주객사 바로 맞은편 뒷골목으로 가면 나온다. 군산에서도 그랬지만, 전주도 조금씩만 걸어다니면 원하는 곳이 바로바로 나온다.

 

 

하지만 1층까지 이어진 줄..다행인건 이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고( 생각보다였지 절대적으로 빠르진 않았다) 우리 뒤쪽으로 머지않아 재료가 떨어져 줄도 못서고 그냥 돌아가는 분들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맛볼 수 있었던 가족회관의 육회비빔밥. 여자친구는 그냥 비빔밥을 시켰고,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모주도 한잔씩 시켰다. 모주는 동동주에 약재를 넣고 끓인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수정과 맛과 비슷해서 술이라는 생각은 거의 안들었다. 비빔밥도 전에 전주놀러와서 먹었던 한옥마을 식당에 비하면 너무너무 맛있었다. 계란찜의 볼륨도 최고! 만족할만한 식사였다.

 

 

밥을 다 먹고 근처에 있는 영화의 거리로 걸어갔다. <전주국제영화제> 표를 미리 예매하려고 생각만 하다가.. 그냥 고즈넉하고 여유롭게 걸어다니다가 그냥 맘에 드는게 있으면 보자고했던 계획과 달리 전주에 사람이 미어터질거라 생각해서 전주가는 버스안에서 급하게 예매했던 <버클리에서>.. 내가 애초에 보고싶었던 영화긴 한데 러닝타임이 244분일줄은 표를 예매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저녁 8시 시작인데 러닝타임이 4시간. 끝나면 12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다 보지 못하고 나가야될거라는 예상대로 1시간 정도만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영화 내용은 정말 좋았다. 나중에 꼭 다시보고 싶은 영화였다. 극장을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작은 우산을 각자 쓴채로 택시를 잡으려고 큰 길가로 나왔다.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고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터미널 근처에 무려 예약까지 해뒀던 모텔;로 향했다. 여행오기전 과장하지 않고 숙소 50여 곳을 알아봤으나..정말 전주시내 거의 모든 숙소가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여차하면 길에서 잘 뻔했는데.. 그나마 모텔이라도 전화로 예약하고 선입금을 한터라..다행이랄까. 아무튼 터미널에 내려서도 비가 많이 왔는데, 숙소에 들어가니 먼저 들어왔던 사람들도 방이 없어서 다시 비가오는 밖으로 쫓겨나고 있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많은 전주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즈막히 밖으로 나와서 한옥마을을 한번 더 보고가려고 했지만, 전날 너무 질려서인지..게다가 더 볼것도 없을것 같고. 원래는 이번 군산-전주 여행의 목적은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떠난것이었는데 정작 대화는 많이 하질 못했다. 전주가 붐빈건 붐빈거고.. 대화를 많이 하려고 떠난 여행에서는 과감하게 많은 일정을 삭제하고 한군데 앉아서 여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느꼈다. 아무튼 내가 꼭 가보고 싶었는데 위치가 애매해서 포기했던 <진미집>이 터미널 근처에도 있는것을 알아내고는 천천히 걸어서 진미집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는지 우리가 첫 손님이었고 나는 콩국수를 여자친구는 메밀국수를 먹었다. 평소 콩국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진미집의 콩국수는 여테 먹은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정말 최고. 콩국수 먹으러 전주를 다시가고싶어질 정도.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는 코아호텔 앞에서 김포공항으로 오는 리무진 버스를 예매했는데 버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한옥마을로 다시 향했다. 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고민하고 있는데 마친 코아호텔 근처라서 여자친구가 그냥 호텔 근처에가서 버스기다리는게 낫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호텔 앞에 내리니 예매한것 보다 앞선 시간의 리무진이 출발 직전에 있었고 시간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걸 타자고 해서 급하게 표를 바꾸고 탈 수 있었다. 정말 이건 신의 한 수.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는 버스를 제외하고는 꽉꽉 막혀서 상대적으로 기분이 좋았달까..나중에도 연휴나 명절에는 차갖고 가지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기 있으면 어쩌냐는 물음에는 아직 마땅한 답을 하지 못했지만.

 

이번 군산-전주여행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엊그제 연남동의 한 까페에서 아주 길~게 했었고 어제 다시 홍대 운동장 벤치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고민하고 당황하고 답답한 불편한 진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모든것을 다 받아들이는 여자친구가 너무 고마웠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