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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혼여행 D4. 상트페테르부르크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아내가 도맡아 했지만, 그런 아내가 내게 전적으로 맡겨준건 신혼여행이었다. 여행지 선정부터 숙소, 일정 등 많은 부분을 내가 맡아서 했. 으면 좋았겠지만, 핀란드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나중엔 시간이 모자라 러시아와 독일의 일정은 아내가 도와주었다. 사실 신혼여행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핀란드에 가고싶다'는 것 뿐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핀란드에 간다고 하면, 오로라를 보거나 산타마을을 들러야 한다고 생각할테다. 그건 호주에가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가는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내내 헬싱키에만 있었다. 최근에 결혼하는 후배가 '핀란드에는 뭐가 있나요'라고 물어서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정말 우리는 그 '아무것도 없음'이 좋았고, 그래서 다른 일정을 더 넣지 않았다. 만약 오로라를 보러 더 북쪽으로 떠났었다면, 만에하나 하루라도 오로라 투어 같은것을 신청했더라면. 만약 신혼여행을 한달정도 떠났다면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겠지만, 딱 일주일이 주어져 있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곳에서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저 멍하니 있고 싶었다. 이게 좀 허세일수도 있지만, 꼭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여유로운 일정마저도 좀 바쁘게 움직였던것 같다. 좀 더 일정을 줄였어야 했다. 헬싱키에서는 그랬어야 했다.

 

 핀란드 그 다음의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은 '러시아'였다. 처음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좋은 제안이지만 새신부로서 씻지도 못하고 기차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신혼여행은 거부하겠다고 했다. 일리가 있어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핀란드와 러시아는 바로 이웃해있는 나라였다. 헬싱키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3시간 반이 걸린다.(처음엔 시차를 생각하지 못하고 2시간 만에 도착하는줄 알았음) 그래서 러시아에서 1박을 하고 싶다고 했고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고속열차(알레그로)를 예매하는데도 정말 애를 많이 먹었다. VR이라는 핀란드 철도청(?) 사이트에서 예매를 하는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해당 일자에 예매가 열리지 않고, 인터넷에는 간간히 이 알레그로에 대한 포스팅이 있긴 한데 자세한 정보는 얻을수가 없었다. 나중에야야 미리 예매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나는 너무 일찍 사이트에 들어가서 예매를 하고자 했던것을 알았다. 

 

아무튼 그렇게 예매를 마치고 혹시 몰라 온갖 서류를 다 출력해갔다. 러시아로 향하는 날 새벽, 첫차를 타기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헬싱키 중앙역으로 갔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아마 걸어서 갔던것 같다. 헬싱키 중앙역을 제대로 본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항상 옆쪽으로만 지나다니니까 정면을 바로볼 기회가 없었다. 

 

 


 

역사 안은 깔끔하고 조용했다. 출도착 현황판이 있었지만 읽을 줄 모르니 패스. 왼쪽 아래에 보이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바로 승강장으로 나선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플래폼을 찾아가면서도 좀 불안했지만, 인터넷에서 아주 많이 본 알레그로 기차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뛰어갔다.


 



열차는 우리나라 KTX만큼 깔끔했고, 첫차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좀 넓게 쓰고 싶어서 중간 탁자가 있는 자리를 예매했더니 성공적.



굉장히 이른 시간이엇지만, 들뜬 마음에 둘만 있는 기차칸에서 사진찍고 난리.



전날 숙소에서 먹으려고 EKBERG(아직 핀란드어로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모름)에서 산 시나몬롤을 싸와서 기차에서 먹었다. 참, 여긴 카트가 안지나다녔다. (식당칸이 있었던가)



바로 다음 역에서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가족이 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때까지 우리칸의 승객은 이게 전부였다. 러시아 국경을 넘으면서 열차내에서 입국심사를 한다. 때문에 입국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굉장히 작은 흰 종이였고 틀리면 방법이 없어서 볼펜으로 금을 긋고 덧쓰고 그랬다. 게다가 블로그에서 읽기로는 러시아 입국심사원은 굉장히 까칠하다고 하여 살짝 긴장을 했었다. 행여나 뭔가 잘못되어 기차에서 내리라고 할까봐; 러시아에서는 내내 이런 원인모를 불안감을 갖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러시아 입국심사원을 그리 친절하진 않았지만 서류를 한번 읽고, 바로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고 돌아갔다. 반면 돌아오는 기차에서 만난 핀란드 입국심사원은 더할나위없이 친절했다. 두 나라의 분위기가 상징적으로 비교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