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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 훗카이도 D1. 오타루 (20140730)


나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열렬한 팬이다. 누구나 인생의 영화라고 꼽을만한 영화 한 편이 있듯 내겐 러브레터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또 인생의 책 한권. 나는 눈이 많은 지방에서 태어나 스무해를 살았으니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내 고향 친구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으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들로 내게는 훗카이도 특히, 오타루에 대해 오래된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찾아가 보지 못한것은 내 인생의 영화에 대한 내 감정은 조금 특별하다고(누구나 그렇겠지만) 생각했었고, 그곳에 찾아가 수많은 관광객처럼 촬영지를 기웃거리면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 신비감을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찾아가고 말았다. 그것도 십여년이 훨씬 지난 한여름에.

 

 

안내책자에 따르면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 급행열차를 타고 오타루역까지  30~40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이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가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국 도착하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밖에는. 오타루 역에서 운하 근처에 있는 숙소로 걸어오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햇살이 따가울 정도였는데 빗방울도 흩날리는 여러모로 이상했던 날.

 

 

숙소에서 내려다 본 운하. 사진으로만 보던 운하의 겨울 모습은 굉장히 운치가 있었는데, 실제 여름의 운하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크게 도드라진 부분이 없어 실망감이 앞섰다. 하지만 해가 지고나면 그 유명세를 실감하게 된다. 숙소에 짐을 풀고 길을 나섰는데, 나는 그저 <러브레터> 생각만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 유리공방과 도서관이 있던 방향으로 향했다. 당연히 오르골당을 비롯한 관광지도 그 근처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정 반대에 있었다. 게다가 오르골당의 주변 상점들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건 6시쯤 오르골당을 겨우 돌아보고 나와서 알았다. 우리가 오타루에서 짐을 풀고 길을 나선게 4시 30분경.

 

 

 아무튼 제법 큰 공원 맞은편에 있던 도서관 건물. 오는길에 있었던 유리공방은.. 이미 오타루 박물관(?)같은 곳으로 용도변경이 되어있었는데 그마저도 공사중이라 외벽이 푸른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영화속 씬 그대로의 벽이 보고 싶어 장막 속을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지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전형적인 영화오타쿠가 되어서..장막을 들여다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도서관에 도착.  여주인공이 앉아있던 도서관 계단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계단은 양쪽으로 나 있지만, 역시나 영화에 나왔던 오른쪽 계단에 서서 사진도 찍고 영화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 했다. 맞은편 공원에서는 지역축제 같은 것을 열고 있어서 노래소리가 흥겨웠다. 영화장면을 떠올리는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영화 촬영지가 근처에 또 있었지만, 예를들어 학생시절 이즈키가 육상경기를 하던 운동장이라든가, 남자 이즈키가 자전거를 타고 여자 이즈키의 머리에 종이봉투를 씌우던 언덕이라든가..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올것 같긴 했는데..너무 덥고 언덕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의 러브레터 여행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그 후, 오르골당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는데 지도를 보고 거리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해서 조금 헤맸다. 우체국 근처 교차로에 앉아서 한참을 지도를 들여다보고 혹시나 여기가 영화속 두 여주인공이 마주치던 그 교차로는 아닐까 많이 고민을 해보았는데, 영화속 장면으로는 도저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모습과 아까 다녀온 도서관 근처에 또다른 교차로가 있어 그곳이겠거니 결론을 내렸다. 러브레터 여행은 끝내기로 한 마당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여자친구가 그래도 모처럼 왔는데 확인이나 해보자고 한 30분 가량을 교차로 어느 호텔앞에 앉아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우리가 한참을 앉아있던 그곳이 내가 찾던 그 교차로가 맞았다. 이건뭐 파랑새도 아니구.

 

 아무튼 열심히 걷고 또 걸어 오르골당에도 다녀왔구, 여자친구가 리스트업 해둔 맛집들도 차례로 들러보았다. 르타오에 들러 조각케익 한조각만 시켜놓구 일정도 다시 정리하고. 전망대에 올라가 근처를 둘러보기도 했다.(르타오 전망대는 절대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건물이 낮은것 같아 얕보았다가 혼쭐이 났음) 과자가게에서 과자도 샀는데 여섯시즈음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우리 여행이 늘 그래왔듯 밥도 못먹었는데. 오징어구이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ㅠ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찾아둔 초밥집이 있었고 그 바로 옆이 유명한 어묵가게여서 호텔에서 먹을 어묵을 산고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행히 어묵가게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는데 이 가게의 시그니쳐어묵(?)은 딱 한개 남았길래 그거 하나랑 나머지 다른 어묵들을 사서 와라쿠(和樂)라는 초밥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대기손님이 어마어마해서 그냥 포기. 근처의 약간 허름해 보이는 초밥집에 들어갔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손님도 현지인들만 몇 테이블 있구, 직원도 많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내내 돌아다니느라 지쳐서인지 밥에 곁들여 나온 미소국물에 속이 확 풀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원하게 국을 마셨다. 음식은 대체로 입에 잘 맞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의 운하가 너무 예쁘게 펼쳐져 있어서 한참을 걷고 또 앉아서 이야기 했다. 사실 나는 휴가 전날 회사생활 중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혹시나 내가 무언가 틀리게 작업을 해둔 것 같은 찝찝함에 출국전 새벽에 회사를 들렀다 갈까라는 마음도 먹었었다. 여행 내내 무언가 마음에 걸려 편치 않았고, 여행 전날밤에도 계속 기억을 떠올려가며 혹시나 틀린게 없을까 고민했었다. 그러니까 여행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아까 낮에 앉아있던 교차로에서 전화로 회사에 들른 후배에게 서류에 적힌 숫자 두개만 확인해달라고해서 이상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계속 찝찝했다. 운하 벤치에 앉아서 자꾸만 우울한 이야기를 여자친구에게 했고, 여자친구는 그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다독거려 주었다.

 

 

숙소에 올라와 작게 딸려있는 발코니에 나가 오타루에만 있다는 오타루비어를 마셨다. 맛은 그닥; 게다가 훗카이도의 로손에서만 판다는 훗카이도 우유로 만든 생크림이 들어간 프리미엄 롤을 사왔고, 아까 과자가게에서 샀던 훗카이도 특제 과자도 함께 먹었다; 뭔가 엄청난 훗카이도 술자리;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밤의 훗카이도 술자리를 꼽겠다. 운하 전체를 둘러보아도 이 호텔의 바로 이 방보다 좋은곳은 없었던것 같다. 발코니가 딸린 호텔 자체가 없었고 호텔이 운하 중앙에 위치해서..정말 너무 좋았다. 10시 정도가 되니 관광객도 거의 없었고 운하 전체는 그저 고요했다. 핸드폰으로 잔잔히 음악을 틀고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너무나 좋다고. 너무나 좋다고 계속 이야기 했다.

 

 

 다음날 아침 운하 너머에 있던 항구를 잠깐 산책하고 폐선이된 기찻길을 걸어 로손에 들러 도시락을 샀다. 호텔에서 천천히 도시락을 먹고 삿포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이렇게 내가 십여년 넘게 고대하던 러브레터의 도시 오타루에서의 여행은 끝이 났다. 엄청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내게는 밤의 운하와 이야기가 남았다. 오히려 오르골당을 먼저 들르지 않았던 것도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저 조용히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하고. 바로 내가 바라던 여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오타루 역 바로 옆에 있는, 러브레터 영화 초반 우체부가 오타바이를 타고 오르던 언덕을 찾았다. 찾기 어렵진 않았지만 그 장면의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아서 대충 짐작가는 부분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언덕 한번 더 올라갔어야 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웠고,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삿포로로 가는 열차를 타고 바다를 지나 도시로 들어섰다. 오타루를 다시 가보게 될까.. 겨울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