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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혼여행 D4.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Mariinsky Theater]


러시아에서의 일정은 크게 에르미타주와 마린스키극장으로 나뉜다. 빼째르에 도착해 바로 에르미타주를 보았고, 마린스키 극장의 공연은 저녁 7시 반이어서 그 사이 성당들도 둘러보고 저녁식사도 마쳤다. 마린스키 극장은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는데, 내가 반한 건물은 구관이어서 공연하는 작품에 상관없이 구관에서 보고 싶었다.

 

당시 신관에서는 백조의호수를 공연했던것 같고, 구관에서는 프랑스 보르도 발레단(으로 기억한다;)의 'pneuma'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무슨 공연인지는 몰라도 자리도 많이 남아있었고 가격도 저렴해서 당연히 구관으로 예매했다. 10월 말 공연이었는데 8월초에 예매를 했고, 가격은 1인당 3,000루블이니까 6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었다.

 

대표

어두운 빼째르의 주택가를 잔뜩 겁먹고 걷기를 10분여, 어두운 거리 끝에 환한 조명을 받고 서 있는 건물이 보였다. '마린스키 극장'이었다. 일단 보이는 건물이 예뻐서 좋았지만 돌아갈 길이 정말 걱정이었다.

한국에서 공연 티켓 자체를 출력해가서 별도의 절차없이 곧장 입장.

공연장 안쪽은 공연을 관람하러 온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닥 유명하지 않은 발레작품에 대부분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이렇게 많이 찾는다는건 놀라웠다. 게다가 다들 드레스업을 하고 온터라..나이키 맨투맨과 유니클로 후리스로 무장한 우리는 (게다가 극장안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다) 조금 눈치가 보였다.

마린스키 극장에서도 에르미타주 입장과 동일하게 코트와 짐을 모두 보관소에 맡겼다. 화장실을 한번씩 다녀온 후 공연장으로 입장.

공연장은 정말 화려하다. 화려하다는 것의 정의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놓았달까. 내가 마린스키의 이 공연장을 꼭 고집했던 이유도, 이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왕의 자리'라고 하는 중앙의 큰 특별석은 누가 앉을까 싶었는데, 공연 시작전 한 커플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걸 보았다. 나름 앞자리를 예매했다고 좋아했는데, 저 왕의 자리를 구했어야 했다.

 

 

발레를 좋아하기도 하고, 나름 로망이 가득하던 마린스키에서 공연을 본다는 마음에 무척 설레였었는데. 정말 이 공연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난해한 작품이었다. 마치 대학생때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때 한문장을 수십번을 읽어도 도대체 뭔소린지 알아먹을수가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다만 나는 그때보다 더 늙고 의욕이 없으며, 낮에 에르미타주를 미친듯이 돌아다녀서 피곤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졸았다. 앞에서 두번째 자리였고, 복장도 특이한 동양인이었지만 정말 공연 내내 엄청 졸았다. 관중속에 파묻힐 수 있는 형태의 의자가 아니고, 개인별 의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조는 모습이 엄청 눈에 띄었을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연 중간중간 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도저히 졸지 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코트와 짐을 찾아 호텔로 걸어가는길. 오던 길 보다는 긴장이 풀렸고, 아름다운 빼째르의 야경을 보면서 나름 분위기 좋은 산책길 이었다. 호텔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