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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주도 한라산 (20140313)


지난 주말엔 제주도에 다녀왔다. 주 목적은 한라산 등반.

 

그 동안 꽤 많은 이유로 제주도를 다녀오면서도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요즘 우리 커플은 등산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서 한 번쯤 올라야하지 않겠냐며. 급하게 일정을 잡았다. 월요일이 업무상 꽤 중요한 날이었음에도 양해를 구하며 제주로 향했다. 매화 축제는 끄트막이었고, 꽃나무에는 새순이 통통히 올라있었다. 첫 날은 요즘 유명하다는 착한튀김집도 들르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 커플이 사귄지 일주일만에 온 제주도 (당연히 아무일도 없었던;)에서 너무 좋은 기억이 있는 에코월드의 곶자왈 산책도 하고. 사실 이 산책이 제법 쌀쌀한 날씨와 예전같지 않은 몸상태로 체력소모가 컸다. 저녁은 땅콩막걸리에 흑돼지를 먹고, 리조트에 들어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진달래대피소까지 4시간이 소요되고 이곳을 12시 전에 통과해야 백록담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에 들기전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는데 그만 이 알람이 주중으로 설정되어있어서 주말아침에 우리는 울리지 않는 알람과 함께 까마득히 잠을 자버렸다. 예정보다 30분 정도 잠을 더 자고 일어났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고, 조금은 포기한 상태로 여유있게 준비를 하고, 조식도 먹고 성판악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차가 너무 많아 길 가에 차를 세우고 등반을 시작하는데, 1시간 정도를 걸을떄까지는 눈도 없고 그저 평범한 초봄의 평온한 산행이었다. 성판악 코스가 워낙 경사도 완만하기도 했고.

 조금 더 오르니 눈이 제법 쌓여있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이 눈의 양은 늘어갔다. 3시간여 만에 진달래 대피소에 다다랐는데, 이미 나는 겨울의 산 한복판에 있었고, 바람도 엄청 심하게 불고 있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제법 힘이 부칠즈음 진달래 대피소가 나왔다. 대피소에 들어가 편의점에서 사온 꽁꽁 언 삼각김밥을 먹었는데, 기상때문에 대피소에는 라면이나 물이 동나버렸다. 10분정도를 머무르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건 여테 오르던 그 산과 차원이 달랐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것으로 가시거리도 굉장히 짧았다. 허벅지도 아프고 그저 백록담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올랐다. 과장없이 말하면, 정말 진달래 대피소와 백록담의 중간 정도의 지점부터는 우는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아주머니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바람을 피했다가 다시 올랐고, 덩치 큰 나조차도 그 바람을 온전히 맞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도 바람에 휘청거리며 굳은 표정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미 여자친구는 그 전 주에 북한산에서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으니, 여기서는 아마 멘탈이 붕괴되는 중이었을 것이다. 백록담을 3~400미터 정도 남겨두고는 암벽등반에 버금가는. 시야확보도 안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등반코스였다. 밧줄이 군데군데 있긴 했지만,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였고 아래가 보이지 않았기 떄문에 그것은 흡사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히말라야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겨우 겨우 한걸음씩 옮겨가며 오르고 있었고, 바람이 휘몰아 칠때면 날아오는 얼음알갱이가 얼굴과 다리에 사정없이 부딪히며 BB탄 총알 수십개를 몸에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서 "야호"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덕분에 보이진 않았지만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고, 정작 정상에 올라서는 여기가 정상인지 뭔지도 모르겠고, 한층 거세진 바람에 도저히 서있을수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여유를 찾고 사진도 계속 찍고, 동영상도 찍고 나중에 보면 웃기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자친구는 얼른 내려가고 싶은게 역력한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하지만 올라올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내려갈지가 걱정이 태산인 상태였던것 같다. 다행히 어느정도 다시 내려오고 나니 길은 훨씬 편했고 제법 속도도 붙일 수 있었다. 다만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굉장히 지루한 코스가 끝없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지만 거의 아무말 없이 내려가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터덜터덜 한 없이 내려갈 뿐이었다.

 그렇게 출발한지 꼬박 8시간만에 (중간에 쉬거나 대피소에 머무른 시간이 굉장히 짧다는걸 감안하면 온전히 걸었던 시간) 주차장에 돌아올 수 있었고, 주차장이 보이자 괜히 두 손으로 만세를 부르며 들어와야 할 것만 같았다. 탈북한 사람들의 심정이 정녕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그분들의 목숨건 여정을 너무 쉽게보는것 같겠지만 나는 정말 그 순간에 그것에 백분의 일쯤의 감정은 느꼈다)

 아무튼 그렇게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저녁으로 꼭 오분자기뚝배기를 먹고 싶어서 검색한 끝에 올레시장근처의 대우정이란 곳에 갔는데 오분자기솥밥과 해물뚝배기밖에 없어 그것을 먹었다. 꽤 특이한 맛이었고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올레시장 구경하면서 과자랑 과일도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까봐 근육통 약도 샀다. 돌아와서는 약을 먹고 잠이들었다.

 마지막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조식을 먹고 해안을 산책하고 짐을 꾸렸다. 밥도 먹고 당근케익도 먹고 추억이 잔뜩있는 소정방폭포도 가려고 했는데 시간 계산을 해보니 딱 하나만 할 수 있어서 소정방폭포로 향했다. 우리 커플에겐 아주아주 비밀스럽고 큰 추억이 있는 곳이라 남다르게 생각하는 곳이다. 어찌보면 이번 제주행은 우리가 만난 초창기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것 같다. 한라산에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두지 못한건 아쉽지만(그러면 안되겠지;) 회사 일정에도 무리해서 간것 치고는 다녀오길 아주 잘했다는 자평이 있었다. 다음은 백두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