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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혼여행 D4.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스도부활성당[Cathedral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카잔대성당[Kazan Cathedral]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말미에는 정말 체력이 바닥나버려서 인적이 드문 전시실에 한참을 앉아 쉬며, 창밖의 네바강을 내다보고 있었다. 시월 말이었지만 러시아의 날씨는 정말 추웠다. 네바강 근처에 서면 코가 빨개질 정도였고, 나름 여유를 갖자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빡빡한 스케줄에 여행 자체에 조금 지쳤던것 같다.

 

 

 

지쳐있던 나를 회복시켜준 마약같은 도넛. 쁘쉬키라고 하는데 도넛하나에 300원이 조금 안됐다, 특별한건 없는데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나를 사로잡았다. 커피도 조금 심심한 맥심커피 맛이었는데 도넛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너무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이후에 다시 한 번 들러 또 먹었다. 가게는 허름했지만 깔끔했고 현지인들이 훨씬 많은 곳이었다.

 

 

도넛먹고 기운나서 걸어나오다가 백화점 앞에 서있는 리무진 옆에서 재빠르게 사진을 찰칵. 백화점에도 한번 들렀었는데 매장 입구에 무서운 가드들이 서 있고, 매장안에는 손님보다 가드가 더 많았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

 

걸어서 그리스도 부활성당으로 갔다. 성당의 모양은 가장 예뻤고, 러시아에서 기대했던 바로 그 성당의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감흥은 크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몸이 지쳐서 그랬는지 ㅋ 성당앞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무척 많았는데 하나도 사지 않았다. 성당 주변을 돌며 사진만 찍고 얼른 이동.

 

대표

좀 더 걸어서 카잔성당으로 이동. 이 성당이 로마의 베드로성당을 본따 만들었다는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지 2년 후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 알게되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것인가. 좀 더 어린나이에 견문을 넓히지 못한것이 조금 아쉽다.

 

《카잔의 마리아 상(Our lady of Kazan)》이 유명하다.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성당 안에는 프랑스군에게서 빼앗은 107개의 군기와 승리의 트로피 등이 걸려 있다.

 

라고 하는걸 이제야 알았다. 바보였던가. 여유롭게만 보내자고한 탓에 준비를 너무 안했는가 보다. 카잔성당 안에서 찍은 사진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심지어 저게 뭔지도 모르겠음ㅠ 카잔대성당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추운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앞 화단에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고, 성당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는것. 그리고 성당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면 스타벅스가 있고 우린 거기서 러시아 인형 모양의 텀블러를 몇개 샀었고, 점원이 그닥 친절하지 않았다는 기억이 남았다.

 

호텔로 가는 길의 성이삭광장.

 

발레공연을 보러 마린스키 극장으로 가기 전, 저녁식사를 위해 들른 teplo라는 식당.

식당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호텔 근처에 있었고, 예쁜 조명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친절한 직원이 외투를 벗어 옷장에 걸도록 도와준다. 손님 모두 외투를 벗어 옷장에 차곡차곡 걸어두는 것이 낯설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는데 여기서 나의 외국음식에 대한 트라우마를 만들어준 '보르쉬'를 만나게 된다.

보르쉬는 비트 뿌리를 넣고 끓인 스프인데, 맛을 설명할수가 없다. 아무튼 정말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아내는 제법 씩씩하게 잘 먹어서 신가했다.

나는 그저 무난히 고기나 씹을뿐. 신혼여행 내내 음식이 잘 맞지 않아 좀 시무룩 했는데, 그나마 먹을만 한건 핀란드의 엘크고기와 독일의 슈니첼 정도. 내가 이토록 향토적인 입맛을 갖고 있는줄 그제서야 깨달았다.

밤의 네바강이 이토록 아름다웠는데, 사실 사진 찍을 당시에는 무척 쫄아(?)있었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때문에, 밤길을 돌아다니는게 정말 많이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서 마린스키 극장까지 걸어서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한국에서 지도를 보면서 '과연 이 저녁시간에 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었다. 버스노선이 있긴 했는데 몇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택시를 타는 어플까지 깔아왔지만 거리를 아주 멀지는 않아서 좀 망설여졌다. 식사를 하고 슬슬 걸어가기로 하는데.. 정말 생각보다 더 어두웠고, 마린스키로 가는 길은 현지인들이 사는 주택가를 통해야 했다. 그 길을 그 시간에 걷고 있는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나는 계속해서 앞뒤를 확인하며 걸어갔다. 혹시라도 우리를 해코지할 덩치 큰 러시아인이 달려들까봐. 하지만 여행 내내 정말 단 한순간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불필요할 정도로 쫄아있었다.

 

그렇게 덜덜 떨면서 도착한 마린스키 극장. 나의 러시아 로망의 중심에 있던 바로 그 극장. 드레스업을 하지 못하고 간건 지금도 조금 후회되지만, 그리스도 부활성당이나 카잔대성당을 볼때보다 훨씬 설레였었다.